2025년 12월, 독일 주요 도시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10대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총알받이가 아니다”, “내 전쟁이 아니다”라는 피켓이 전국 90여 개 도시를 뒤덮었다.
이들은 독일 정부가 통과시킨 병역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다. 법안은 자발적 병역 지원을 기본으로 하지만, 상황에 따라 사실상 ‘징병제’를 다시 시행할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뒀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공식 폐지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전역이 안보 체계를 재점검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었다. 이번 병역법 개정은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청년층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다시금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자발적인 정치적 행위자로서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다.

독일 청소년들이 병역법 개정에 반대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2025년 12월, 독일 함부르크 중심가에서 열린 '징병 반대 학생 파업' 시위 현장. 수천 명의 10대 청소년이 거리로 나섰다. 출처: 노동자연대

독일 병역법 개정, 무엇이 달라졌나

2025년 통과된 병역법 개정안의 핵심은 ‘선택적 징병제’에 가깝다.
표면적으로는 자원입대를 유도하지만, 필요 시 강제 징집이 가능한 구조다.
  • 2027년부터 18세 남성 전원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며, 일정 기준에 따라 군 복무 대상이 될 수 있다.
  • 여성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성평등 논란이 병행되고 있다.
  • 독일 정부는 이를 통해 군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안보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안에는 자발성의 한계가 분명하다. 실제로 병력 충원이 일정 수준에 미달할 경우, 강제 소집이 가능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기존의 완전한 모병제와는 다른 제도적 변화다.


10대들의 시위,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2025년 12월 5일, 약 5만 5천여 명의 독일 청소년들이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징병 반대 학생 파업(Schulstreik gegen Wehrpflicht)”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특징적인 점은 이 시위가 성인 주도 정치 세력이나 정당이 아닌, 학생 주도 자발 조직이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 “기후위기와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외쳤다.
이는 단순히 군복무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국가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또한, 병역제 부활을 통해 무기 산업만 이익을 얻는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독일 정부가 라인메탈 같은 방산기업에 과도한 예산을 배정하고, 교육·복지 분야를 소홀히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 세대의 새로운 정치 참여 방식

이번 시위는 단순한 반발의 차원을 넘는다.
청년층, 특히 10대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조직화하고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세대 정치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정보 공유는 SNS,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확산되었다.
  • 기존 정치권이나 언론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 일부 참여자들은 반전운동, 기후운동과 연계해 정치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는 과거 학생운동과는 다른 수평적이고 분산된 행동 양상을 보여준다.
독일 정부는 이 현상을 “표현의 자유로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안보 논리와 충돌하고 있다.


유럽 전체로 번지는 ‘징병제 리바이벌’ 흐름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는 최근 ‘국민 복무 프로그램’을 확대했고, 폴란드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덴마크는 여성 징집 확대를 고려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NATO 체계 내 자국 병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전쟁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시점에서 ‘징병제는 다시 논의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국가마다 사회적 수용성은 다르다. 독일의 경우, 징병제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청년층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이는 제도적 유사성을 넘어 문화적·세대적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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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징병제 논쟁은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다

독일 병역법 개정과 청년층의 반발은 단순히 '징병제 도입'이라는 법률적 쟁점이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 세대 간 갈등, 사회적 우선순위, 그리고 유럽의 안보 전략까지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다.

청년 세대는 더 이상 정치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은, 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떻게 거리로 나서고, 디지털 공간을 활용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만들어내는가이다.

지금 유럽에서 다시 떠오르는 ‘징병제’는 과거의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충돌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 청년들이 있다.

📌 참고자료

면책 문구:
본 글은 사회 현상을 해설하기 위한 일반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집단·정책·이념에 대한 가치 판단을 의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