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심부 브뤼셀에서 트랙터 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감자가 날아다니고, 불붙은 타이어가 도심을 뒤덮는다. 이는 단순한 교통 혼란이 아닌, 유럽 농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 징후다.
유럽연합(EU)은 남미 공동시장 메르코수르(MERCOSUR)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정이 유럽 농민들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값싼 남미 농산물이 대거 유입되면, 유럽 농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번 시위는 단순한 반대 표명이 아니라, 유럽 농업 보호 정책의 균열에 대한 구조적 저항이자, EU 내부 정책 충돌의 상징으로 읽힌다. 정치와 무역, 지역경제가 얽힌 복합 갈등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EU와 메르코수르 협정: 무엇이 쟁점인가
EU와 메르코수르 간 자유무역협정은 25년 이상 협상 끝에 최종 서명을 앞두고 있다. 협정이 체결되면, 유럽산 자동차·기계·와인의 수출길이 열리고, 반대로 브라질·아르헨티나산 소고기, 설탕, 쌀 등의 수입이 늘어난다.
문제는 농업 분야의 비대칭이다. 남미 농산물은 가격 경쟁력이 높고 환경 규제도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유럽 농민들은 동일한 기준 없이 저렴한 농산물이 시장을 점령할 경우,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EU 집행위는 FTA 체결을 통해 미국·중국 중심의 무역 환경에서 지정학적 균형 추구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내부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브뤼셀 거리의 트랙터, 그리고 감자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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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남미 FTA 반대 시위를 벌이는 유럽 농민들. 트랙터와 감자 투척은 농업 붕괴에 대한 경고를 의미했다. 출처: 네이트뉴스 |
2025년 12월, 브뤼셀의 도심은 시위대로 가득 찼다. 1만여 명의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와 의회 건물을 에워쌌고, 감자와 폭죽, 날계란, 불붙은 타이어로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농업'이라 적힌 목관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분노 표현이 아닌, 농업의 '죽음'이라는 정치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는 생산자들이 느끼는 존엄의 위협이자, 정책 결정권자들이 경제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체성의 균열을 드러낸다.
EU 내부의 균열: 찬반으로 갈린 27개국
FTA를 둘러싼 갈등은 EU 내에서도 첨예하게 갈라진다.
- 찬성: 독일, 스웨덴, 스페인 – 무역 다변화와 수출 확대 필요
- 반대: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 농업 보호 및 환경 기준 문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식량 안보를 희생할 수 없다”며 협정 서명 유보를 주장했고, 반면 스페인 산체스 총리는 “남미 시장은 EU의 전략적 발판”이라며 조속한 체결을 촉구했다.
EU의 단일시장 기조 아래, 각국의 산업 구조와 정치적 기반은 뚜렷한 이해 충돌을 낳고 있다.
이 시위는 단순한 무역 반대가 아니다
농민 시위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농업은 곧 지역 사회이며, 유럽 정치의 근간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유지된 보조금 체계와 보호 정책은 EU 통합의 일종의 사회적 합의였다.
이번 갈등은 '자유무역'이라는 글로벌 표준과 '지역 보호'라는 내부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다. 이는 곧 유럽 내 다른 산업과 정책 영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향후 전망: 협상 테이블 위의 농업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EU에 FTA 서명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1개월 연기를 제안하며 균형점을 찾으려 하고 있다.
FTA가 성사되더라도, EU는 반드시 농업 보호 조항, 환경 기준 정비, 가격 안정장치 등 세부 설계를 병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시위는 단발성 이슈가 아닌, 유럽 통합체제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는 반복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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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트랙터가 가리킨 사회적 균열
유럽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는 단지 FTA를 반대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유럽 사회 내부의 균열, 특히 경제 효율성과 사회 보호 간의 충돌을 드러낸 사건이다.
글로벌 무역의 확장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은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설계와 정책 실행이 균형을 잃을 때, 사회는 거리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번 시위는 그 신호 중 하나였고, 앞으로 그 신호는 더 빈번해질 수 있다.
📌 참고자료
면책 문구:
본 글은 사회 현상을 해설하기 위한 일반 정보이며, 특정 집단·정책·이념에 대한 가치판단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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