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다.
2026년 1월 5일, 향년 74세.
5세 아역 배우로 영화에 입문한 그는 60여 년간 18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며 '국민배우'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의 별세 소식은 단순한 사망 뉴스가 아닌, 한 시대의 문화사적 퇴장을 의미한다.

사망 원인은 음식물로 인한 기도 폐쇄에 의한 심정지다.
혈액암 투병 중 회복기를 보내던 중의 사고였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월 9일, 장지는 경기 양평이다.
이 글은 그가 남긴 유작 4편과 연기 인생을 통해, 안성기의 문화적 위치를 정리한다.


안성기의 생애와 데뷔: 영화는 그의 전부였다

안성기가 공식 석상에서 밝게 웃고 있는 모습
생전 공식 석상에서 밝게 웃는 안성기. 2026년 별세 전 공개 행사 중 모습. 출처: 중앙일보

안성기는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그의 데뷔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1957)였다.
다섯 살 아역 배우로 스크린에 첫 발을 디딘 이후, 그는 고래사냥, 투캅스, 실미도 등 수많은 흥행작과 예술영화에 출연했다.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연예계를 떠났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영화로 복귀하며 “기왕 하는 거 평생 하자”고 다짐했다.
이후 그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배우로 자리 잡았으며, 청룡·백상·대종상 등 국내 3대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했다.


연기 스펙트럼: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안성기의 필모그래피는 곧 한국 영화사 그 자체다.
그는 거지(고래사냥)부터 킬러(인정사정 볼 것 없다), 대통령(피아노 치는 대통령), 퇴마 신부(퇴마록)까지 모든 인간 군상을 연기했다.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표현, 깊은 내면 연기, 그리고 인격적 신뢰는 안성기의 상징이었다.
1997년 대통령 후보 3인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로 그를 언급했을 정도로, 그는 정치·이념을 초월한 대중적 존경을 받았다.


마지막 유작 4편: 병상에서도 끝까지 연기했다

안성기의 유작은 4편이다.
  • 카시오페아 (2022): 알츠하이머에 걸린 딸을 돌보는 아버지 역
  • 한산: 용의 출현 (2022): 물길을 아는 장수 어영담 역
  • 탄생 (2023): 종교적 인물의 내면을 조명한 역사극
  • 노량: 죽음의 바다 (2023): 특별 출연으로 의미를 더한 유작
모두 암 투병 중 촬영된 작품으로, 안성기의 연기에 대한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출연 중인 작품을 중도에 포기하는 건 병보다 더 고통스럽다”며 연기를 이어갔다.


장례와 유족: 영화인장이 그의 마지막 무대

안성기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31호실, 발인은 1월 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양평 '별그리다'다.

영화배우협회와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장례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등이 운구에 참여한다.
유족으로는 조각가 아내 오소영 씨, 미술가인 두 아들 다빈·필립 씨가 있다.

그의 진짜 유산은 무엇인가

안성기의 진짜 유산은 필모그래피 이상의 신뢰다.
그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20년 넘게 활동했고, 자살 예방 캠페인에도 앞장섰다.
정치권의 장관직 제안을 고사하며 오로지 배우로 남기를 택한 그의 선택은, 한국 영화계에서 '존재 자체가 상징'인 몇 안 되는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 라디오 스타에서 그는 이런 대사를 남겼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다.”

그는 그런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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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영화라는 이름의 생을 마치고

안성기의 별세는 단순한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다.
한국 영화가 한 시대의 언어를 잃은 사건이다.
그러나 그의 유작과 발자취는 여전히 기록되고, 관람되고, 평가될 것이다.

문화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안성기는 단지 기억될 인물이 아니라, 기록되어야 할 문화 그 자체였다.

📌 참고자료

면책 문구:
본 글은 사회 현상을 해설하기 위한 일반 정보이며, 특정 집단·정책·이념에 대한 가치 판단을 의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보는 2026년 1월 5일 기준 주요 언론 보도(조선일보, 중앙일보, 연합뉴스TV, 문화일보)를 기반으로 정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