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제정 이후 76년간 유지되던 ‘공무원 복종 의무’ 조항이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인사혁신처가 입법 예고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이제 공무원이 단순히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닌, 지휘·감독 체계 아래에서 협력하고 판단하는 주체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단순한 문구의 수정이 아니다.
상관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명시되며, 기존의 수직적 명령 체계에 균열이 생겼다. 이는 단순한 규정 변경을 넘어 공직사회의 조직문화와 운영 원칙 전체에 대한 재설계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공무원법 개정안 브리핑을 진행 중인 정부 관계자 모습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복종 의무 폐지를 포함한 공무원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공무원법 제57조, 어떻게 바뀌었나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공무원법 제57조의 수정이다.
기존 조항은 다음과 같았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현행 제57조)

개정안은 이 표현을 삭제하고 다음과 같은 다섯 개 항목으로 구조화했다.
  1. 지휘·감독 이행: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2. 의견 제시권: 구체적인 직무 수행과 관련해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3. 거부권 명문화: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4. 불이익 금지: 이 같은 의견 제시나 지휘·감독 불이행을 이유로 한 불이익 처분은 금지된다.
  5. 시행령 마련: 구체적인 적용 절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문장 표현을 완화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판단과 책임을 제도적으로 확장한 결과다.


위법한 지시, 이제는 거부할 수 있다

이번 개정의 상징적 핵심은 “위법한 지시 거부권”의 명문화다.
그간 대법원 판례나 내부지침 등에서는 위법 명령에 대한 불복 가능성을 인정해왔지만, 법령에 명시된 것은 처음이다.

공무원은 앞으로 직무수행 중 위법 가능성이 있는 지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거나, 불이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는 곧 명령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 판단과 책임을 분산하는 수평적 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만, 여전히 쟁점은 존재한다.
‘위법성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과, 업무 지시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혼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확한 적용을 위해서는 시행령과 가이드라인 마련, 실무 중심의 교육과 사례 축적이 동반되어야 한다.


법령 변화가 공직사회에 미치는 실제 영향

공무원 사회는 지금까지 ‘복종’이라는 단어로 규정된 질서에 익숙했다.
그것은 업무의 효율성과 지휘 명확성을 확보하는 데 적합했지만, 동시에 위법·부당한 지시에 저항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변화는 그 질서 자체에 도전장을 내민다.
  • 조직문화 측면에서는 상하관계의 엄격성이 완화될 수 있다.
  • 실무 대응력 측면에서는 판단 기준과 책임의 경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
  • 정책 결정 측면에서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보다 투명한 절차를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정은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닌, 공직사회 전반의 권한 구조와 책임 체계에 대한 재설계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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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복종에서 판단으로, 이제는 방향이 바뀐다

‘복종’이라는 단어는 이제 공무원의 법률적 의무 목록에서 사라진다.
남은 것은 판단과 책임, 그리고 협력이라는 새로운 공직 윤리다.

그 전환은 아직 과도기적 실험일 수 있다.
적용 과정에서 해석의 차이, 현장 혼선, 조직 내부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변화가 공직사회를 더 투명하고 자율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번 개정은 단순한 삭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트렌드는 바뀔 수 있지만, 그 변화가 남긴 조직문화는 오래간다. 법은 바뀌었고, 이제 조직은 스스로를 바꿀 차례다.


📌 참고자료

면책 문구:
본 글은 정책 변화 내용을 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일반 정보이며, 최종 적용 조건 및 해석은 공식 정부 발표를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